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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0-04
  • [기획사업분과] 만주 독립항쟁 역사유적지 답사기 - 서인아 (주제연극 배우)
  •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806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않는 삶을 살길 바라며>

 

새로운 인연을 맞이하게 된 27일의 인천공항. 10분의 만남 일지라도 이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여 한달음에 달려 와주신 김희선 위원장님의 배웅으로 가슴 따듯하게 한국에서 발을 땔 수 있었다. 2시간의 비행으로 새로운 문화, 역사의 땅에 발을 붙였다. 첫 발을 내딛자마자 풍겨오는 어색한 내음. 난 이번 기행을 하면서 어색함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지고 싶었다. 어색함, 낯선, 새로움, 두려움, 익숙함 속 에서 다양함을 느끼고 싶었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버스에 오르는 순간에 만주의 비가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억세고 줄기찬 비는 마치 이곳에 환영인사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환영인사를 미리 준비라도 해온 듯 우비를 하나씩 입고 그 반김을 온몸으로 화답 해 주었다.

 

처음으로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한 것은 목단강 8녀 투강비였다. 중극장은 거뜬히 채울 정도의 웅장함으로 목단강 앞에 당당히 서있었다. 맨 앞 여성의 품 안에 한 소녀가 안겨있었다. 그녀의 팔이 축 쳐져있었지만 8녀 모두의 눈은 생생히 살아있었다. 비록 딱딱한 모양으로 남아있었지만 정신은 살아있었다. 나 또한 여성의 성을 갖고 있으면서 항상 하는 생각이 있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점은 분명히 있으나 다르지 않다. 모두가 똑같이 할 수 있다 생각한다. 그 후 발해 상경용천부 동경성에서는 살아있는 유적들을 만져보고 경험했다. 하지만 그곳은 누군가의 눈길을 받기 원하는 것처럼 꽃밭으로 뒤덮여져 있었다. 꽃밭은 아름다웠으나, 그 아름다움의 목적이 유적을 훼손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름답다고 느끼는 나, 이게 과연 맞는 것인가? 하는 나. 두 가지의 생각이 공존하는 내가 있었다. 첫 날의 만남들은 그렇게 마무리되는 듯 했으나 아니었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이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톨 게이트처럼 보이는 통로를 세 곳 중 한 곳 밖에 사용 할 수 없어서 장장 2-3시간을 갔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기어갔다.

 

 

그렇게 천천히 가는 시간을 느끼는 동안 새로움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림 같은 풍경을 마주했다. 새로움에 행복은 잠시 연길로 들어섰고, 한국보다 한국어가 더 많은 간판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괜히 내가 부끄러워졌다. 이런 감정은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사라졌다. 이제는 부끄럽다 보다는 이들과 더욱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들에 대한 자존감으로 느껴졌다. 모든 것을 느끼고 받아들이기에 하루의 시간이 너무 아쉬웠다. 이 곳 에서의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다음 날윤동주시인의 모교 명동학교와 생가를 가보았다. 그 곳에서는 참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온 몸과 생각을 바쳐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의 모교와 생가는 상업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학교는 어설프게 보존 해 놓았다.생가의 잘 보이는 앞부분은 수리를 했으나,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뒷부분은청소도 해 놓지 않고 수리조차 해놓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곳에서 윤동주시인의 시집을 구매했다. 알면서도 그 수단에 휩쓸려주기로 하였다. 그들의 눈에 그저 우린 관광객일 뿐이니까.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그분들의 노고로 현시대의 우리는 감사하게 지내고 있다. 그런데 그분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이 아니고 후손들의 정신을 깨우침의 목적이 아니라 그저 우리들의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이 된다는 것. 선조들의 앞에 우리는 과연 떳떳할 수 있을까.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이 공존 했다.


두 번째 밤이 지나고 우리는

두만강 나루터를 찾았다. 강 너머에서 북한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강 하나를 끼고 국경이 나뉘는 것이 참 신기했다 물론 남한의 끝자락에서 북한을 본 적은 있어도

그들의 생활은 본 적이 없었다. 강 건너 초록빛으로 물든 산에 둘러 싸여있는 모습이었다. 북한의 차도, 자전거도 처음 보았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강 건너의 중국을 바라보고 있을까? 우리는 두만강 나루터에 모여서 중국에서 바라보는 북한은 거리상으로는 가깝지만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나는 국경선을 밟아보고 싶었다. 한국인은 갈 수 없게 되어있다. 말 한마디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우리를 하루 동안 안내 해준 친구의 도움으로 몰래 가보려고 했으나.. 한국인 관광객인 티가 났는지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결국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원래 훈춘을 또 들를 예정이었으나, 거리가 너무 멀기에 숙소로 바로 돌아갔다.

 

 

그 다음날은 언제나 말로만 들어왔던 백두산 천지를 보러가는 날 이었다. 하지만 출발 할 때부터 날씨가 흐려 천지를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갔다.백두산을 오른다는 생각에 등산 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도착했다. 그리고 이제 등산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단단히 우비를 입었다. 우선 큰 셔틀버스를 타고 10여분을 올라갔다. 그리고 나서 본 것은 산악자동차였다. 산악 자동차를 타고 우린 백두산을 올라갔다. 엄청나게 구불거리는 거리, 땅이 잘 보이지 않는 높이 그리고 그 것들을 신경쓰지 않는 대담한 속도. 무엇보다 구름 위에서 바라보는 자연의 장관은 정말 대단했다. 역시 사람은 자연 속에서 그들의 방법대로 살아갈 수는 있지만 자연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는 환영인사라 해야 할지 모르겠는 우박을 맞았다. 태풍안에 들어가 있는 듯 한 바람, 따가운 비와 함께 잘 정돈되어있는 나무계단 길을 3분정도 걸어서 가 본 곳엔 구름이 가득한 천지가 있었다. 점점 옅어지는 구름들 사이에 천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언제 우박이 내리고 비가 내렸는지 모르게 천지는 구름을 걷어내고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짧은 순간은 정말 황홀경에 빠진 듯 했다. 그 짧지만 황홀한 장관은 평생 잊지 못 할 것이다. 내 뇌리에 저장되어 내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여행이 필요한 이유를 찾은 것 같다. 20대 때 한 여행의 경험이 내 남은 인생들의 밑거름이 되어 힘든 순간 내 인생에 행복감을 가져다주어 다시 일어 설 수 있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기행문을 쓰면서도 다시금 그 때의 감정에 동화되어 행복한 상태를 만들어준다. 물론 행복한 감정도 있고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만났다. 넷째 날 압록강 보트를 타러갔을 때 우리는 보트에 타고 있었고 한 쪽은 중국, 한 쪽은 북한이었다. 그 사이의 강을 가로질러가면서 북한 사람들을 보았다.그냥 마음이 인사를 해 보고 싶었다. 원래는 인사를 하면 안 되고 북한사람도 인사를 받아주면 안된다고 한다. 애타게 손을 흔들어보았다. 그들이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들은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까? 우리는 중국을 와서 보트를 타며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산 쪽으로 일을 하러가는 중이었던 것 같다. 무엇이 같은 곳에서 나고 자란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일까.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며, 왜 이렇게 밖에 될 수 없었을까. 그리고 왜 이 상태를 지속하고 있는 것일까.그 흔들어 준 손 한번이 고맙고 미안하고 슬펐다. 모두가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우리는 깨어있어야 한다. 우리가 깨어있어야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누군가가 보라는 것을 보지 않고 내가 봐야 할 것을 분별해서 보아야 한다. 많이 보고, 읽고, 들으며 경험해야 한다. 세상에는 많은 편견들이 있고 그 편견은 사람을 망친다. 내가 직접 경험 해 본 바탕으로 가치관을 세우며 그것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옳은 행동을 하기 위하여 넓은 세상과 만나고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이번 만주 기행은 이것들을 알려주었다. 세상에 나가보지 않으면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그렇게 갇혀 사는 것이다.

 

이번 기행에서 독립운동가분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그분들의 정신을 생각하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좋은 분들을 만나서 동포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헤어짐이 있음을 알고 만나게 된 가이드 장용선생님, 연변대학생, 멋진 동포 선생님. 그분들이 전해준 진심이 있었기에 편견은 사라졌고 정신이 깨어났다. 이번 여행은 너무나 감사한 시간이었고 절대 잊지 못할 경험을 선물 해 주었다. 이제 이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이번 기행을 다녀온 이들의 할 일인 것 같다. 행복한 시간을 함께 나누어 주신 모든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같이 보낸 밤의 그 소중한 말들은 여행을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우리는 빛나는 날들을 위해 과거의 발자취를 따라 걷고 이해하며, 앞으로 우리의 발자국을 남기러 나아가야 한다.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