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사 기
이희수 (항일여성독립운동연구소 위원)
30년쯤 전인가... 북한이 백두산의 반을 중국에게 주었다고 했다. 뉴스 보도로 시작되었고 한국전체가 들끓었다. 냉전이 끝나고 중국과 수교가 재개되었는데 갑자기 백두산관광이 가능하단다. 이미 1962년부터 백두산의 일부가 중국령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냥 우리민족의 백두산을 중국에게 반이나 빼앗겼다는 이야기만으로 전 국민이 흥분하고 분노하고 통탄했다. 그때는 나도 오기가 발동하여 통일이 되어 우리 땅을 다시 찾을 때까지 절대 내발로 백두산은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때는 정말... 나름... 진심이었다. 답사 3일차. 어제 두만강 끝부터 계속 버스로 이동하며 국경지대를 보면서 내려왔고 오늘 백두산을 거쳐 내일부터는 다시 압록강으로 갈 것이다. 첫날 목단강 팔녀투강비부터 답사단을 쫓아오던 비에 이따금 번개까지 치는 유난스런 날씨를 걱정하면서 산을 올랐다. 입장료를 내고 친환경 저상버스를 타자 서서히 머리를 죄어오는 편두통과 귀울림이 시작되었다. 타이가다. 시베리아에서나 볼 듯한 침엽수와 자작나무들이 키다리 경쟁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숲에 홀릴 때쯤에 또 비가 와다다하고 창을 때리면서 무섭게 군다. 백두산 북파코스의 마지막, 지프차로 갈아타니 나무도 관목도 서서히 사라지고 분홍색 꽃이 핀 풀과 이끼만 듬성듬성 보이는 회색빛 언덕들이 나타난다. 이건 산도 아니고 사막도 아니다. 지구의 어느 곳이 아닌 듯, 고도가 높아지자 전혀 다른 낯선 풍경이다. 심장이 졸아든다. 길이 심하게 굽이져서 차는 미친 듯이 흔들린다. 우리 발성 좋은 젊은 답사단원들이 소리를 지르고 중국인운전사는 더 심하게 차를 흔든다. 춥고 비도 오고 흔들리고... 팔다리로 지프차 벽을 붙들고 버티다가 문득 정신이 났다. 그래, 어제 두만강 건너 북한을 보았었다. 강변 너머는 정말 멀지않았다. 지금 백두산이다. 대박... 미쳤다... 그 와중에 천지까지 열렸다. 전설의 용은 우리들에게 자기 집을 들여다보도록 허락해주었다. 1898년 러시아지리학회 탐사단의 글을 빌려본다. 「가린-미하일롭스키의 여행기」 327-328쪽 우리 앞에 펼쳐진 전경은 충격적이고 매혹적이면서도 얼이 빠지도록 놀라운 것이었다. 저기 아래쪽에 450m 가량 되는 수직의 비탈에 넓이가 2㎢정도 되는 초록색 호수가 빛나고 있었다. 검은색의 뾰족한 성곽들로, 또는 그 성곽들의 폐허들로 온통 둘러싸인 이 신비로운 투명한 녹색의 호수는 최고급 사파이어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을음이 앉은 어두운 색의 벽들은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수직으로 뻗어있었고, 거대하고 기묘한 톱니 모양으로 분화구를 감싸고 있었다. 그 호수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마법과 같은 평화로운 고요함이 있다. 거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삶이 있다. 삶 자체가 매우 강하게 느껴진다. 마치 거기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저 아래에 있는 자신들의 성에서 지금 뛰어나오면 음악이 울려 퍼지고 화려한 배들이 떠다닐 것만 같다.
그 어떤 동화나 꿈처럼 잊혀진, 완전히 다른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곳에는 죽음, 완전한 죽음만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호수 근처에서 스트렐비츠키가 모든 동식물계를 통틀어 찾은 것은 날아가던 새들이 가져다 놓은 것으로 보이는 뼈뿐이었다. 죽음! 화산 자신도 이곳에서 잠이 들었고, 이 투명한 호수는 화산의 무덤이고, 상복과 같이 검은 그을음으로 덮인 가파른 오각형은 이 무덤을 둘러싼 벽이다. 이들은 무덤의 비밀을 간직하고 준엄한 모습으로 서있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지쳐서 분화구를 감싸고 있는 바위들이 기묘하게 튀어나온 모양을 감상하고 있다. 저기 거대한 곰이 커다란 머리를 떨어뜨리고 조용히 있다. 저기에는 날카로운 끝을 가진 첨탑이 있다. 그리고 저기 바위 위에는 신비롭고 꿈처럼 부드러운 여성상이 있다. 한손을 가장자리에 괴고 호수가 있는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 조각상에는 영원한 평온함과 순간의 신선함이 있다. 그녀는 마치 애석한 듯, 의심하는 듯, 갈등하는 듯 생각에 잠겨 있고 그렇게 아직 완전히 창조되지 않은 세계의 신비로운 이곳에 남아있게 되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했다. 비바람에 우박까지 내려 우비를 입었는데도 온몸이 젖었다. 운동화도 속까지 홀딱 젖었다. 어제부터 목이 부어서 소금물을 작은 약병에 담아가지고 왔는데 꺼내보니 풍선처럼 부풀어 있다. 수선을 떨면서 노천온천에 손을 담그고 삶은 달걀을 사먹고 궂은 날씨와 역경을 이기고 정상에 오른, 환각인지 환희인지 모를 흥분상태에 있다가 부풀어있는 소금물병을 보고 다시 해발 2700미터를 깨닫는다. 식당에서도 공원에서도 심지어 백두산 정상에서까지 중국인들이 몰려다니며 하도 큰소리로 떠들어서 신비를 느낄 틈은 없었다. 그냥 충격적이었다. 발해 동경성도, 윤동주생가도, 광개토대왕비도 우리 답사단 중에 전생에 나라를 구한 이가 있는지 아주 오래전 격변의 역사를 우리는 햇살을 받으며 평화롭게 보았다. 커다란 평지를 멀리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편안하고 마음이 넓어지는 곳에서 아주 예쁜 하늘에 구름과 아무나 졸졸 따라다니는 강아지, 들판에 가득 핀 백일홍을 봤었다. 넓은 평원에서 호연지기를 느끼고 돌에 새긴 시도 읽어보고 해바라기가 가득한 여름의 끝도 풍족하게 마음에 담았다. 그러나 두만강과 백두산, 압록강까지의 여정은... 아픈 허리가 문제가 아니라... 한 대 맞은 것도 아니고 무언가 머릿속이 복잡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투먼에서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북한이다. 다리 중간까지만 중국 땅이다. 이때가 오후 3시쯤이었는데 분홍색 단체복을 입은 여성들이 북한쪽으로 가고 있다. 중국에서 일을 하고 퇴근하는 북한 여성들로 짐작했다. 오른쪽에는 아직 개통 전인 커다란 다리가 보이고 중국은 입구에 아주 커다란 세관건물을 짓고 있다. 철도는 아니지만 조만간 이곳으로 상당량의 물류가 오고갈 시기가 곧 올 것 같다. 두만강이 이렇게 작은 강인 것도, 국경선이 이렇게 허술한 것도, 출퇴근을 하고 있는 이 평화로운 모습도... 다 어이가 없다. 그동안 대한민국만 섬나라였던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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