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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30
- [기획사업분과] 만주 독립항쟁 역사유적지 답사기 - 위기훈 (극작가)
-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054
짧은 여행기 출발 전부터 억울한 비감이 조금 있다. 항일, 또는 독립운동에 딸려오는 희생, 학살, 제국주의라는 단어 때문일까. 올해 2019년은 알려진 대로 3.1만세혁명, 우리나라 건국 100주년이다. 그래서 요청받는 글감으로 독립운동가 소재가 많다. 몇 분의 평전을 읽고 극화했음에도 그 피 냄새를 실감할 수 없다. 당시 상황을 세밀하게 고안하고 지문과 대사를 쓰며 때로 울컥한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자가동력 감정이입에 불과하다. 출발 전에 느낀 약간의 비감은 평전들에서 얻은 역사적 정보 때문이다. 그러나 비극의 역사와 내 스스로 이입시킨 감정으로는 실감할 수 없는 피 냄새, 그 괴리에 더 큰 이유가 있는 듯하다. 이번 여행으로 간극을 메울 수 있을지 모른다. 근거 없는 생각에 기분이 들뜬다. 입술에 부푼 물집을 톡 터뜨린다. 배낭을 메고 새벽 공항버스정거장을 서성이며 일정표와 답사지역 지도를 펼친다. 폰에 저장해둔 안내 파일 제목이 근사하다. ‘지나간 역사에서 미래를 만나다!’ 강제된 교훈의 뉘앙스가 없다. 역사의 유적을 보러 가서 미지의 미래를 만난다는 불가능이 매력적이다. 표지를 넘겨 차례를 보니 주요답사지가 나열되어 있다. 목단강 팔녀투강비, 발해 상경용천부 동경성, 용정 만세운동 3.13 반일의사릉, 15만 원 탈취사건기념비, 옌볜대학 항일무명영웅기념비, 훈춘 애국부인회 본부 터, 대종교 3종사 묘역, 백두산 천지, 장백폭포, 광개토대왕릉비, 장군총, 오회분5호묘, 동북항일연군기념관, 양세봉장군 기념상. 서너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익숙하지 않다. 모르는 명칭을 안주머니에 넣고 비행기에 오른다. 낯선 곳을 걸으니 해방감이 한층 넓어진다. 내 주변의 일상으로부터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지면서 복잡한 일이 작고 단순하게 보인다. 짓누르는 압박과 부담을 껍질처럼 벗고, 나 혼자만 빠져나온 착각이다. 옌볜 시내는 한문과 한글을 병기한 간판이 즐비했다. 붉은 색으로 크게 쓴 활자가 대부분이지만 시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느슨했다. 수십 년을 외쳐온 공산주의 선동의 숨은 의미가 들킨 모양이었다. 들켰어도 기꺼이 덮어준 것 같았다. 옌볜의 감각은 큰 글씨를 시끄럽게 느끼지 않아 보였다. 자본주의적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간판도 대수롭지 않은 듯, 그 아래로 구부정한 옌볜 노인이 지게를 지고 지나갔다. 스마트폰 액정을 터치하며 스포츠머리 사내가 전기스쿠터에 올라앉았고, 일본산 마크를 단 자동차가 붉은 신호등 앞에 정지했다. 뒤뚱거리다 멈춘 아이와 엄마가 서로 다른 곳을 물끄러미 보았다. 낡은 것과 첨단의 그것이, 학살의 주체와 핍박의 과거가 같이 있는데 충돌 없이 나른했다. 이 기이한 편안함에서 나는 내가 겪어온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무엇이 그 기억을 끌어왔을까. 내 기억을 가둔 그때의 한 장면을 저들 그림자에서 발견했던 걸까. 나는 그때의 그곳에서 멀어졌고, 저들은 지금 여기서 그림자에 붙잡혀있다는 기분. 그건 연민이 아니었다. 우월감이었다. 눈을 감았다. 골몰해도 단서가 없었다. 옹색한 감상은 두만강에서도, 압록강에서도 돌발적으로 일어났다. 넓이뛰기 선수가 두어 번 내달려 뛰면 넘어갈 듯 좁은 강폭. 저편에 북한 사람들. 일행이 흔든 손을 그 역시 망연히 보다 허리를 구부렸다. 바라본들 바뀌는 형편은 없다. 없었다. 없을 것이다. 그런 류의 체념으로 읽어버렸다. 일행들과 오와 열을 맞춰 기념사진을 찍었고, 아름답다, 안타깝다, 짧은 탄성을 주고받았으며, 국경을 가로지른 다리 위에서 북한사람들을 지나쳤다. 중국에서 일하고 북한으로 퇴근하는 우리 민족을 지나치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소리에 그들은 소스라치게 놀랐고, 나와 일행은 인사를 나누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은 모양이라며 싱겁게 웃었다. 북한으로 퇴근하는 그들도 우리의 싱거운 웃음을 읽었으리라. 들켜서는 안 되는 것을 들켰다는 기분에 목 아래가 빨개졌다. 숙소로 돌아와 지고 다니던 배낭을 벗으니 과장되게 홀가분했다. 일행 틈에 섞여 평소보다 말이 많고 소리를 크게 내는 내가 우스웠다. 그런데 서툴고 되바라진 이 태도를 멈출 수가 없었다. 인민복의 동상 틈에서 본 저고리. 한반도로부터 멀리 떠나와 여기 이곳에서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총칼을 휘두른 사람들. 붙잡혀 능욕을 당할까 스스로 물에 빠져 죽은, 비참하고 열렬한 그들의 스토리. 한낮 강가에서 건너를 바라본 현실 속의 비현실적인 기분은 ‘두만강 푸른 물에’ 노래를 불렀다.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고, 그럴 용기도 없어 대신에 크게 웃고 떠들었다. 백번 올라 두 번 볼 수 있다는 농담을 들으며 백두산 천지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잎갈나무 숲이 끝나고 펼쳐진 벌판. 어디선가 읽은 것처럼 ‘천생 나라 하나 만들게 생긴’ 모습이었다. 그 위로 절벽이 되어 절경이 된 화구벽이 병풍처럼 둘러서서 천지 물을 담고 있었다. 경이로웠다. 이 천지가 동쪽으로 흘러 두만강이 되고, 북쪽은 송화강, 서쪽은 흑룡강, 남쪽으로 압록강이 된다고 들었다. 신령스러웠다. 영험했다. 어떻게 감히 이 산 아래에서 이데올로기가 맞부딪혀 전쟁을 했을까, 입술을 씹었다. 신화가 사실로 감각되는 착오를 마음껏 허용하며 비룡폭포를 등 뒤에 두고 소천지를 돌아 산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명동학교. 교정 뒤편에서 야트막히 구불거린 능선.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처럼 시인의 손에서 흘러내린 시 구절.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되풀이해서 삼켰다. 격렬하게 가만히 있고자 했던, 그토록 가열차게 숨죽인 시인의 홍조가 오버랩 되었다. 결국 동북3성 항일독립운동유적 답사 길은 광개토대왕비도, 백두산도, 독립운동기념비도, 열사들의 묘비 앞도 아닌 시인의 시 한 구절에 발목 잡혔다. 최선을 다해 악착같이 죽음에 당도한 사람들. 시인의 시는 그들의 신음소리 같았다. 그들의 주문처럼 웅웅거렸다. 누구나 뒷모습엔 예외 없이 살아온 세월이 들러붙는다. 겹겹이 쌓인다. 어느 날엔 넘치고 어느 해질녘에 모자라게 담긴다. 그런 뒷모습을 목격하고서야 비로소 슬픔에 대해 말하는 슬픔이 가슴에 얼룩진다. 옌볜의 느슨하고 나른한 감각이 최선을 다해 악착같이 죽은 이들의 뒷모습처럼 여겨진다. 빼앗긴 나라에 주저앉은 동포를 위해 여기까지 달려와 싸우고, 싸우다 간신히, 간신히 죽은 사람들.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졌다고 복잡한 사정을 작고 단순하게 두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욱 정밀하게 성분을 나누고, 지향하는 바를 일깨워 사람이 사람한테 겨눈 총칼을 막아내려 했을 것이다. 비참하고 열렬하게. 죽은 사람의 죽음을 살아있는 우리의 지금으로 위로할 수 없다. 서툴고 되바라진 태도로도 감당 못한 좌절 역시 불필요하다. 끝끝내 그들이 느낀 열패감, 생에 환멸, 온몸으로 저주하던 이데올로기. 메울 수 없는 그때와 지금의 간극에는 아무 짝에도 소용없다. 가을이다. 높고 높은 하늘을 보며 중얼거린다. 두만강, 두만강, 압록, 압록, 압록. 하릴없이 뭉클하다. 그뿐이다. 그럴 뿐이다. 2019년 9월 초하루, 동북3성 항일독립운동유적지를 다녀와서. 위기훈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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