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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08
  • 황애시덕
  • 작성자 : heradm 조회수 : 129

 

 

작가 이구영

 

 

황애시덕(黃愛施德​​)

 

 

<유공자 정보>

◆ 생년월일 : (1892-04-19)

◆ 사망년월일 : (1971-08-24​​)

◆ 본적 : 평안남도 평양 대찰리 151
◆ 주소 : 경기 인천 북구 부평 276
◆ 운동계열 : 국내항일

◆ 애국장​(1990​​)

 


 

 

 

 

<공훈록>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이화학당(梨花學堂)을 졸업하고 평양숭의여학교(平壤崇義女學校) 교사로 근무하던 그는 1913년 김경희(金敬喜)·안정석(安貞錫)과 함께 여성들의 항일구국의식 함양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송죽결사대(松竹決死隊)를 조직하였다.


송죽결사대는 이후 중년층 여성(松兄第)과 젊은 여성(竹兄弟)을 고루 포섭하여 조직을 확대하였으며 회비와 자수 등을 통해 군자금을 모집하여 국외 독립운동기지에 송금하였다.


1919년에는 파리강화회의에 여성대표를 파견하기 위한 여비 마련에 노력하였으며 동경(東京)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에 참가한 후 독립운동 지령문을 휴대하고 귀국하여 국내 각처를 순회하며 비밀리에 항일유세활동을 폈다.


그는 1919년 3월 김마리아(金瑪利亞)·박인덕 등과 독립운동의 방안에 관해 협의한 결과 첫째, 부인단체를 조직, 남성들과 제휴하여 항일운동을 펴며, 둘째, 각 학교 학생들은 동맹휴교로 항쟁할 것을 결의하고 정신여학교·신명여학교 등을 방문하여 학생들을 지도하였다.


이일로 인하여 그는 일경에 피체되었으나 동년 8월 증거불충분으로 면소되었다.


출옥후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에 가입하여 동회의 조직을 확대·개편하고 총무 겸 편집인을 맡아 주도적으로 활동하였다.


동회는 대한민국청년외교단(大韓民國靑年外交團)과의 유기적 관련하에 본부와 지부를 통해 상해 임시정부 국내연통부(聯通府)와 대한적십자회(大韓赤十字會) 대한총지부(大韓總支部)의 역할을 대행하였다.


그러던 중 동년 11월 일경에 피체되어 징역 3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28년 2월 뉴욕에서 김마리아·이선행(李善行) 등과 함께 근화회(槿花會)를 조직하여 재미동포들의 조국광복운동을 후원하였다.


귀국한 그는 1929년 8월 우봉운(禹鳳雲)·김정원(金貞媛) 등과 함께 여성들의 경제적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경성여자소비조합(京城女子消費組合)을 주도·결성하였는데 이는 각 방면의 여성들을 망라하여 회원들의 출자에 의해 운영되는 유일한 여성경제기관이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10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124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425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855·856·886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47·48·151면

기려수필 270면

고등경찰요사 192·194면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222면

박은식전서(상) 628면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854면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63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674·675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427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29·430·43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