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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06
  • 안경신
  • 작성자 : heradm 조회수 : 110

 

 

작가 최정순

 

 

안경신​​​(安敬信)

 

 

<유공자 정보>

 

◆ 생년월일 : (1888-07-22)
◆ 사망년월일 : (미상​​)
◆ 본적 : 평안남도 대동 재경리면 오금리
◆ 운동계열 : 만주방면

◆ 독립장(1962​​​)

 


 

 

 

 

<공훈록>


평남 대동(大同) 사람이다.

 

출생 후 강서군 읍내 덕흥리(江西郡邑內德興里)에 이주하여 살았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1개월간 구류를 살았다.

 

그러나 그후 더욱 분발하여 조국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고, 1919년 11월 감리교 여성 신자로서 중진(重鎭)이던 오신도(吳信道 : 목사 손정도의 모친)·안정석(安貞錫) 등과 같이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를 조직하고, 평양본부의 교통부원(交通部員)겸 강서지회(江西支會) 재무(財務)를 담당하여 활약하였다.

 

동회에서는 많은 군자금을 거두어 상해 임시정부에 보내는 등 활동하다가 1920년 초에 동지 106명이 일경에 체포되자, 김행일(金行一)을 따라 상해로 망명하였다.

 

그러다가 때마침 1920년 8월 미국의원단 일행이 내한(來韓)하게 되는 기회를 이용하여 항일투쟁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국제적 여론을 환기시키자는 목적으로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서 국내에 결사대를 파견하게 되자 제2대에 참가해서 장덕진(張德震)·박태열(朴泰烈) 등과 함께 상해를 출발해서 평양까지 들어왔다.

 

이들은 동년 8월 3일 평남경찰국 청사에 폭탄을 던져 평양시내를 진동시켰고, 평양시청과 평양경찰서에도 투탄하였으나 도화선이 비에 젖어 불발되고 말았다.

 

그후 피신하여 함남 이원군 남면 호상리(南面湖上里)에 숨어있었으나 일경에 탐지되어 1921년 3월에 마침내 체포되었다.

 

그리하여 모진 고문과 악형 끝에 평양지방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공소하여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동아일보(1920. 8. 24, 1921. 5. 2, 6. 12, 6. 18, 10. 1, 10. 20, 1922. 3. 18, 3. 25, 4. 10, 1927. 12. 16)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분책 461면 기려수필 292·293·294·295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274·275·289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207·208·209·210·211·214~219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23·326·327·328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863·864·873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33·926면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65·214·302·472면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81면 무장독립운동비사 63·64면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636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49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