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상화 갤러리
- 2021-12-31
- 김인애
- 작성자 : heradm 조회수 : 417
작가 황정경
김인애(金仁愛)
<유공자 정보> ◆ 생년월일 : (1898-03-06) ◆ 사망년월일 : (1970-11-20) ◆ 본적 : 충청남도 서천 華陽 瓦草 80 ◆ 주소 : (全北 全州 華山洞 292) ◆ 운동계열 : 3.1운동 ◆ 대통령표창(2009)
<공훈록> 1919년 3월 13일 전북 전주군(全州郡) 전주면(全州面) 남문(南門) 밖 시장, 대정정(大正町) 우편국 일대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동월(同月) 12일 밤 기전여학교(紀全女學校) 학생이었던 김인애는 임영신(任永信) 등 13명의 동지들과 결사대를 조직하여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품고 동지의 집에 모여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거사 당일 정오 이들이 준비했던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뿌리며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치니 군중들도 이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불렀다.
김인애는 이날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녀는 동지들과 함께 유치장으로 들어가면서도 독립만세를 외쳤다. 형무소에 수감된 이들은 단식으로 저항하며 독립항쟁의 의지를 불태웠다.
또한 일본 검사가 위압된 자세로 복종을 강요하자, 이들은 ‘우리가 어찌 너희들의 판결에 복종할 자이랴? 너희들은 우리의 강토를 강탈하고 우리의 부형을 학살한 강도이거늘 도리어 3천리 강산에 주인이 되려는 우리를 비법이라 하니 이는 비법한 판결이다’라고 역설하였다.
결국 김인애는 3개월 여의 옥고를 치른 후 1919년 6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고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判決文(光州地方法院:1919. 6. 30)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全羅北道 全州 紀全女學校 己未年 大韓獨立萬歲運動(金仁愛筆, 1957)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19. 9. 5) 朴殷植全書 上卷 629~630면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권 499면, 제9권 28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