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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31
  • 김영순
  • 작성자 : heradm 조회수 : 409

 

 

작가 문복현

 

 

김영순​​(金英順​)

 

 

<유공자 정보>

 

◆ 생년월일 : (1892-12-17)
◆ 사망년월일 : (1986-03-17​)
◆ 본적 : 서울 경성부 효제동35번지​
◆ 주소 : 서울시永登哺區 新吉洞2013(16통4반)​
◆ 운동계열 : 국내항일

◆ 애족장(1990)


 

 

 

 

<공훈록>


서울 사람이다. 

 

정신여학교 교사로 있던 그는 오현주(吳玄洲)의 권유로 1919년 비밀결사 대한민국 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에 가입하여 항일독립운동을 폈다. 

 

대한민국 애국부인회는 1919년 3~4월 오현주·오현관(吳玄觀)·이정숙(李貞淑) 등이 주도·조직한 혈성단 애국부인회(血誠團愛國婦人會)와 최숙자(崔淑子)·김원경(金元慶)·김희열(金熙烈)·김희옥(金熙玉) 등이 중심이 되어 대조선 독립애국부인회(大朝鮮獨立愛國婦人會)가 동년 6월 대한민국 청년외교단(大韓民國靑年外交團) 총무 이병철(李秉澈)의 주선으로 통합하여 결성되었다. 

 

이후 동회는 기독교회·학교·병원 등을 이용하여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면서 회원들의 회비와 수예품 판매를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수합하여 상해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동회는 1919년 9월 김마리아(金瑪利亞)·황애시덕(黃愛施德)을 중심으로 결사부(決死部)·적십자부(赤十字部)를 신설하고 항일독립전쟁에 대비한 체제로 조직을 전환하였는데 그는 서기로 선임되어 동회의 취지서, 본부와 지부규칙을 복사하여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폈다.

 

동회는 본부와 지부를 통해 임시정부 국내연통부(聯通府)의 역할과 대한적십자회(大韓赤十字會) 대한총지부(大韓總支部)의 활동을 대행하였다. 

 

또한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힘써 6천원의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펴던 중 그를 비롯한 동지들은 1919년 11월 일경에 피체되어 그는 1920년 12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7년 4월 신간회(新幹會) 자매단체인 근우회(槿友會)의 창립준비위원회에 참가하여 회원모집 활동을 폈으며 동년 5월 28일 개최된 동회의 창립대회에서 21인의 집행위원 중 한명으로 선출되어 교양부를 맡아 여성의 지위향상과 항일독립운동에 힘썼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222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856·938·939·942면

항일순국의열사전 65면

동아일보(1920. 6. 30, 1927. 4. 28)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8권 475면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6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