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상화 갤러리
- 2022-01-06
- 이성완
- 작성자 : heradm 조회수 : 453
작가 이화섭
이성완(李誠完)
<유공자 정보> ◆ 생년월일 : (1900-12-10) ◆ 사망년월일 : (1996-04-04) ◆ 본적 : 함경남도 정평 府內 豊興 ◆ 주소 : 京城 校洞 151 ◆ 운동계열 : 국내항일 ◆ 애족장(1990)
<공훈록>
정신여학교(貞信女學校)에 재학 중이던 그는 3·1독립운동 당시 함남 원산(元山)의 상동교회(上洞敎會)와 함흥여고(咸興女高)의 동지들을 방문하여 독립선언서·지령문 등을 인쇄·배포하며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경에 피체되었으나 면소처분으로 풀려났다. 그는 1919년 4월 오현주(吳玄洲)·오현관(吳玄觀)·이정숙(李貞淑) 등이 주도·조직한 혈성단애국부인회(血誠團愛國婦人會)에 가입·활동하였다. 동회는 상해 임시정부와 연계하여 투옥지사들의 옥바라지와 그 가족들의 후원활동을 폈는데 동년 6월 대한민국청년외교단(大韓民國靑年外交團) 총무 이병철(李秉澈)의 주선으로 최숙자(崔淑子)·김원경(金元慶)·김희열(金熙烈)·김희옥(金熙玉) 등이 중심이 된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大朝鮮獨立愛國婦人會)와 통합하여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로 확대·개편되었다. 동회는 이후 기독교회·학교·병원 등을 이용해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면서 회원들의 회비와 수예품 판매를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수합하여 상해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동회는 1919년 9월 김마리아(金瑪利亞)·황애시덕(黃愛施德)을 중심으로 결사부(決死部)·적십자부(赤十字部)를 신설하고 항일독립전쟁에 대비한 체제로 조직을 전환하였는데 그는 백신영(白信永)과 함께 결사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동회는 본부와 지부를 통해 임시정부 국내 연통부(聯通府)와 대한적십자회(大韓赤十字會) 대한총지부(大韓總支部)의 역할을 대행하였다.
또한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힘써 6천원의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펴던 중 그는 1919년 11월 일경에 피체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면소되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기려수필 270 고등경찰요사 192·194면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222면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63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452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856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427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29·43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