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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08
  • 주세죽
  • 작성자 : heradm 조회수 : 481

 

 

작가 황선미

 

 

주세죽​​​(朱世竹)

 

 

<유공자 정보>

◆ 생년월일 : (1899-06-07)

◆ 사망년월일 : (1950)
◆ 본적 : 함경남도 함흥 咸興 上里 256
◆ 주소 : 서울 薰井 4
◆ 운동계열 : 국내항일

◆ 애족장(2007​​​)

 


 

 

 

 

<공훈록>
 

함경남도 함흥 출신인 주세죽은 1919년 3.1운동당시 함흥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1개월간 함흥경찰서에 수감된 바 있었다. 

 

이후 서울에서 조선여성동우회(朝鮮女性同友會) 등을 주도하며 여성운동을 이끄는 한편,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 중앙 후보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사회주의 운동의 핵심에 있었다. 

 

일제는 이런 그를 ‘여자 사회주의자 중 가장 맹렬한 자’로 평가하며 ‘요시찰인물’로 감시하고 있었다.

 

1924년 5월 서울에서 사회주의 여성단체 여성동우회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고 이듬해 1월 경성여자청년동맹 (京城女子靑年同盟) 결성을 주도했다. 4월 고려공산청년회에서 활동하다 조선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25년 11월 ‘제1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으로 남편 박헌영이 일경에 붙잡힌 후, 그 또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1926년 6월 주세죽은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던 일경에 다시 붙잡혔으나 2개월만에 풀려났다. 

 

1927년 5월 근우회(槿友會) 임시집행부에서 활동하던 주세죽은 병보석으로 출감한 박헌영과 1928년 8월 블라디보스톡으로 탈출했다.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하여 1931년 졸업하였다.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중국 상해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참여하던 중, 박헌영이 일본 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자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소련에서도 주세죽은 ‘사회적 위험분자’로 낙인찍혀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당하는 등 박해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성대경, 1996) 469면

이정박헌영일대기(역사비평사, 2004) 99·185~186·538~543면

國外容疑朝鮮人名簿(朝鮮總督府 警務局, 1934) 178면

時代日報(1926. 6. 25, 7. 26)

朱世竹 訊問調書(京城地方法院:1926. 8. 2)

思想에 관한 情報(京城地方法院 편철문서), 京鍾警高秘 제13691-1호(1925. 12. 3)

東亞日報(1925. 3. 5, 12. 3, 12. 4, 1926. 7. 23, 8. 22)

朝鮮日報(1926. 6. 25)

검찰행정사무에 관한 기록(국내 항일운동자료) (1), 京鍾警高秘 제5577호(1924. 5. 10)

1934~1938(스탈린시대) 정치탄압 고려인희생자들(모스크바 2002) 2권 114·14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