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갤러리
  • 초상화 갤러리
  • 2022-01-06
  • 정정화
  • 작성자 : heradm 조회수 : 511

 

 

작가 조정태

 

 

정정화​​​(鄭靖和)

 

 

<유공자 정보>

 

◆ 생년월일 : (1900-08-03)
◆ 사망년월일 : (1991-11-02​​)
◆ 본적 : 충청남도 연기 全義 大谷 429
◆ 주소 : 中國 四川省 重慶
◆ 운동계열 : 중국방면

◆  애족장​(1990​​)

 


 

 

 

 

<공훈록>


충남 연기(燕岐) 사람이다.

 

시부(媤父)인 대동단(大同團) 총재 김가진(金嘉鎭)을 따라 1919년 3·1독립운동 직후 상해로 건너갔다.

그녀는 1930년까지 임시정부의 재정 지원을 위하여 6회에 걸쳐서 국내를 왕복하면서 거액의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고 한다.

1932년에는 윤봉길(尹奉吉)의 상해(上海) 홍구공원(虹口公園) 의거 후, 일제의 감시를 피해 임시정부가 절강성(浙江省) 가흥(嘉興)으로 이동함에 따라 이동녕(李東寧) 김 구(金九) 엄항섭(嚴恒燮) 등과 함께 이동하여 임시정부를 도왔다.

1934년에는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에 입당하여 활동하였으며, 1940년에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의 창당요원으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또한 같은 1940년에 한국혁명여성동맹(韓國革命女性同盟)을 조직하고 그 간부로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41년에는 임시정부의 보호 하에 있는 중경(重慶) 3 1유치원(幼稚園)의 교사로 임명되어 독립운동가 자녀들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였다.

1943년 2월 23일에는 중경(重慶)에 있는 임시정부 산하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의 재건조직에 참여하여 훈련부장에 선출되었으며, 국내외 한인 부녀의 총단결과 조국광복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방송을 통하여 국내외에 있는 동포여성들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하고, 혹은 위문 금품을 거두어 일선에 있는 독립군을 위문하며, 혹은 적진 중에 끼어 있다가 포로수용소를 통하여 넘어오는 동포 여성들을 계몽 교육하는 등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또 전란과 병고로 고생하는 동포들을 찾아 정성어린 위문과 부조로 천애이역(天涯異域)에서 동포애의 꽃을 피우기도 하였으며, 멀리는 미주 한국여성단체들과의 긴밀한 연락으로 재미(在美) 각계 동포들의 임시정부에 대한 지지성원을 두터이 하는 데에도 공헌하였다.

정부에서는 그녀의 공적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3권 494 613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1031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3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