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상화 갤러리
- 2022-01-06
- 장선희
- 작성자 : heradm 조회수 : 462
작가 이진석
장선희(張善禧)
<유공자 정보> ◆ 생년월일 : (1893-02-19) ◆ 사망년월일 : (1970-08-28) ◆ 본적 : 황해도 재령 ◆ 주소 : 서울 鍾路 內需 170-2 ◆ 운동계열 : 국내항일 ◆ 애족장(1990)
<공훈록>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 서울 정신여학교(貞信女學校) 교사로 근무하던 그녀는 독립선언서를 휴대하고 귀향, 독립선언의 소식을 알림으로써 재령의 만세시위운동을 격발시켰다. 또한 그녀는 1919년 3∼4월경 오현주(吳玄洲) 등이 주도·조직한 혈성단애국부인회(血誠團愛國婦人會)에 가입·활동하였다. 동회는 상해 임시정부와 연계하여 투옥지사들의 옥바라지와 그 가족들의 후원활동을 폈는데 동년 6월 대한민국청년외교단(大韓民國靑年外交團) 총무 이병철(李秉徹)의 주선으로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大朝鮮獨立愛國婦人會)와 통합하여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로 확대·개편되었다.
이때 그녀는 동회의 외교원을 맡았다. 이후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기독교회·학교·병원 등을 이용해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면서 회원들의 회비와 수예품 판매를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수합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동회는 1919년 9월 김마리아(金瑪利亞)·황애시덕(黃愛施德)을 중심으로 결사부(決死部)·적십자부(赤十字部)를 신설하고 항일독립전쟁에 대비한 체제로 조직을 전환하였는데 그녀는 재무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동회는 본부와 지부를 통해 임시정부 국내연통부(聯通府)와 대한적십자회(大韓赤十字會) 대한총지부(大韓總支部)의 역할을 대행하였으며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힘써 6천원의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펴던 중 그녀는 1919년 11월 일경에 피체되어 1920년 6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녀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1920. 6. 29 대구지방법원) 고등경찰요사 192·194면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63면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50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856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427면 기려수필 270면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222·223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281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29·430·43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