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상화 갤러리
- 2022-01-08
- 홍애시덕
- 작성자 : heradm 조회수 : 652
작가 김종도
홍애시덕(洪愛施德)
<유공자 정보> ◆ 생년월일 : (1892-03-20) ◆ 사망년월일 : (1975-10-08) ◆ 본적 : 서울 鐘路 新門 ◆ 주소 : 서울 城北 安岩 4街 ◆ 운동계열 : 국내항일 ◆ 애족장(1990)
<공훈록> 1912년 이화학당(梨花學堂)의 교사로 재직하면서 여성계몽과 문맹퇴치운동을 통해 애국정신을 고취하였으며 1919년 유관순(柳寬順)과 함께 비밀결사 여성동지회(女性同志會)를 조직, 여성운동을 폈다고 한다. 1920년에는 김활란(金活蘭)·윤성덕(尹聖德) 등과 7인전도대(7人傳道隊)를 조직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계몽운동을 펴다가 일경에 피체되어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그는 1922년 6월 조선여자기독청년회(朝鮮女子基督靑年會 : YMCA)의 초대 부회장에 선임되어 동회를 이끌었으며, 1923년 9월 유각경(兪珏卿)·최활란(崔活蘭) 등과 함께 조선기독교여자절제회(朝鮮基督敎女子節制會)의 결성에 참여하여 여성의 권익옹호 및 사회풍토 개선활동을 통해 여성의 지위향상에 힘썼다. 1926년 12월에는 김활란·방신영(方信榮) 등 기독교계 인사들과 함께 망월구락부(望月俱樂部)를 결성하고 사회주의 계열 여성운동과 협력을 모색하였다. 1927년 1월에는 재경동경여자유학생친목회(在京東京女子留學生親睦會)의 발기총회준비위원에 선임되어 여성운동단체의 통합에 힘을 쏟았다. 동년 4월 신간회(新幹會)의 자매단체로서 좌·우익 여성단체의 통일적 기관인 근우회(槿友會)의 결성준비에 참여하여 동년 5월 27일 창립총회에서 21명의 집행위원 중 한명으로 선임되어 김활란·이현경(李賢卿)과 함께 조사부를 맡아 여성의 지위향상과 항일독립운동에 힘썼다. 1928년 1월 상해(上海)에서 개최되는 감리교동아회(監理敎東亞會)에 김창준(金昌俊)·조병옥(趙炳玉) 등 교계대표 8인과 함께 한국교회대표단(韓國敎會代表團)의 일원으로 참석하였다. 그후 1935년부터 8·15광복 때까지 종교를 통한 민족운동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8권 475·693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939·942면 동아일보(1927. 5. 31, 1928. 1. 1)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1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