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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3 독립운동 ‘강철날개’ 권기옥, 의병장 윤희순을 아십니까 [한겨례]
이름   관리자    |    작성일   2018-06-12 10:38:48    |    조회수   98

독립운동 강철날개권기옥, 의병장 윤희순을 아십니까

등록 :2015-08-13 20:59수정 :2015-08-14 05:29

 

 


 

1935년 중국 공군에서 선전비행을 준비하던 한국 최초 여성비행사 권기옥(왼쪽 둘째). 하늘자연 제공

1935년 중국 공군에서 선전비행을 준비하던 한국 최초 여성비행사 권기옥(왼쪽 둘째). 하늘자연 제공

한국 첫 여성비행사 권기옥

한결같이 무장투쟁에 투신

 

한말 첫 여성의병장 윤희순

왜놈 대장 보거라격문 써

 

날개옷을 찾아서: 한국 최초 여성비행사 권기옥

정혜주 지음/하늘자연·15000

통일의 길, 한국여성독립운동에서 찾다

이배용 외 지음/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미정

해방 70년을 맞아 학계와 출판계에서도 여성독립운동가 재조명 움직임이 활발하다. 먼저, 지난 3월 백범의 비서였던 잊혀진 독립운동가이화림의 이야기를 다룬 <이화림 회고록>(강촨제 등 엮음, 박경철·이선경 옮김)이 나왔다. 최근에는 <날개옷을 찾아서: 한국 최초 여성비행사 권기옥>(정혜주 지음)과 어린이용 도서 <하늘을 쫓는 아이: 한국 최초의 여성비행사, 권기옥>(정지아 글, 홍정선 그림, 스푼북)도 발간됐다. 이달 안으로 학술서 <통일의 길, 한국여성독립운동에서 찾다>(이배용 외 지음)와 청소년 교양서 <한국의 여성독립운동가를 말하다>(심옥주 외 지음)도 잇따라 출간될 예정이다.

<날개옷을 찾아서>19252월 중국 윈난항공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의 첫 여성비행사가 된 강철날개권기옥(1901~1988) 지사의 생애를 다룬 평전 소설이다. 지은이 정혜주 소설가는 2000년 계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중편소설 ··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중국을 오가며 권 지사의 유족을 비롯해 10명이 넘는 관계자들의 구술을 받고, 여러 논문과 관련 자료를 종합한 끝에 한 여성독립운동가의 일생을 섬세하고도 성공적으로 복원했다.

1901년 평안남도 중화군 설매리에서 태어난 권기옥은 1919년 평양 숭의여학교 재학 시절 여러 차례에 걸쳐 만세 시위에 참여하고 이를 주도하다 평양경찰서 유치장에 갇힌다. 3주일 동안 모진 고문을 받은 뒤 후유증으로 학질이 발생해 6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그 뒤 임시정부공채 판매, 평양도경 폭파사건 가담, 비밀연락원 등 활동을 하다가 발각될 위험에 처하자 멸치잡이 배를 타고 1920년 국제 도시 상하이로 망명한다. 그곳에서 비행기로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안기겠다는 각오를 강단 있게 밝히며 임시정부의 추천장을 받아 19241월 윈난항공학교 1기생으로 입학한다. 애초 항공대 창설을 구상했던 임시정부에 여력이 없어지자 권기옥은 중국 공군에 투신한다. 19262월 여운형을 만나 국민군 항공대 소좌를 소개받은 뒤 국민군에 합류한 것이다. 1932년 상하이전쟁 때 정찰기를 몰고 출격한 그는 일본 지상군에 기총소사를 퍼부었고, 전쟁 뒤엔 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중일전쟁 이후엔 충칭에서 좌우로 분열된 부인들을 단합해 1943년 한국애국부인회를 결성하고 1949년 서울로 돌아온다. 해방을 맞고 나서는 공군 창설에 기여해 대한민국 공군의 어머니로 일컬어졌고 한국전쟁 시기에는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첫 여성 전문위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1957년 한국 최초의 여성출판인이 돼 <한국연감> 발간을 시작해 16년간 사업을 지속했고, 1977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1990년에 독립장으로 직급조정)을 받았다.

2005년 영화 <청연> 개봉 뒤 그 주인공인 박경원과 권기옥 둘 중 누가 최초의 여성비행사인지 논란이 일었지만, 권기옥의 비행이 박경원보다 2년 앞선다. 정혜주 작가는 권 지사에 대해 그의 행적에서 감탄스러운 점은 놀라운 전투성으로, 한결같이 무장투쟁의 길을 걸었던 것이라며 시인 이상화의 형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반려인 이상정과 더불어 좌우이념의 차이를 아우르는 중도통합의 길을 열고자 했다라고 평가했다. “사회적 금기에 도전해 꿈을 이뤘고, 대의를 위해 일방적으로 자신을 희생하지도 않았으며, 훼절하지 않으면서도 성공적인 인생을 살면서 겨레 사랑의 꿈을 놓지 않아 유관순을 넘어선 대중적 독립운동가로 기록할 만하다는 것이다.

<통일의 길, 한국여성독립운동에서 찾다>는 일제강점기 여성독립운동가를 중심으로 조력자로서만 인식돼오던 한국 여성들의 존재와 의의를 재확인한다. 여성독립운동가들은 독립운동가인 남편과 자식의 뒷바라지에 머물렀다는 편견이 있지만, 당시 여러 여성들은 군사훈련과 전투에 직접 참가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한말 최초의 여성의병장인 윤희순 의사(1860~1935)는 대표적이다. 윤 의사는 의병장인 시아버지 유홍석과 남편 유제원의 영향을 받아 의병활동에 나섰고,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 사랑 모를소냐 () 우리도 의병하러 나가보세라는 가사를 담은 안사람 의병가를 비롯해 의병군가’ ‘병정가등을 지어 널리 알렸다. <윤희순 평전>(2009)의 지은이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은 윤 의사는 을미의병 때 일본군에게 왜놈 대장 보거라는 격문을 써보내 꾸짖으며 조선선비 아내 윤희순이라고 기명했을 정도로 기개있는 여성이었다고 설명했다. “강원도 춘천(옛 춘성군) 지역 부녀자들 76명에게서 군자금을 모금하고, 30여명의 부녀자를 중심으로 안사람 의병단을 조직해 남장을 한 채 정보 수집에 나서고 군사활동, 병기제작, 화약제조까지 했다는 것이다. 윤 의사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올 초까지 국가보훈처가 판결문, 일제 정보보고 문서, 신문 등을 뒤져 발굴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은 총 1931. 이 중 독립유공자 포상자는 15일 새로 포상을 받게 될 17명을 포함해도 265명에 그친다. 3·1운동에 적잖은 영향을 끼친 대한독립여자선언서’(19192)에 서명한 8명 여성들 가운데서도 김숙경을 제외한 나머지는 지금까지 독립유공자에 추서되지 않았다. 국가보훈처 공훈심사과 관계자는 포상을 받지 못한 여성독립운동가들 대부분의 경우 자료 부족 탓이 크다고 설명했다.

김희선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회장(전 국회의원)은 이에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자료는 잘 남아 있지 않은데, 한두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퍼즐을 맞춰 활동을 복원하는 일이 중요하다서훈 기준을 낮추더라도 정부가 그들을 기억한다면 나라를 위해 싸운 사람들이 대우받는 사회라는 것을 널리 각인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04435.html#csidxa0583ecfa2d3d7d9a5afdc687be47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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