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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8 [훅!뉴스] 1987의 ‘연희’들, 청량리 성추행부터 남영동 시위까지 [노컷뉴스]
이름   관리자    |    작성일   2018-06-14 11:47:59    |    조회수   71

[!뉴스] 1987연희, 청량리 성추행부터 남영동 시위까지

CBS노컷뉴스 김정훈 기자, 박윤혁·이예린

 

생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FM 98.1)

SNS 참여 : 페이스북[www.facebook.com/981news]

 

 

김현정> 금요일의 코너, !뉴스. 오늘은 하루 앞당겨서 만납니다. 목요일의 훅!뉴스, 오늘도 김정훈 기자 나왔습니다. 지난주에 영화 '1987' 속의 고문기술자 이근안씨, 이근안을 찾아서 현재 심경 전했습니다. 굉장한 화제가 됐었고, 제가 그때 김정훈 기자한테 부탁한 게 있었어요. 후속 취재를 좀 해달라그 당시와 관련된 여러 인물들이 궁금하다고 했는데, 취재를 해봤다고요?

 

김정훈> 영화 1987의 인기가 계속되는데요. 당시를 살았던 중년들은 영화를 보면서 그때의 생생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고요. 또 젊은 세대들은 잘 몰랐던 현대사의 한 장면을 접하면서 감동하고 있다는데, 영화를 보고 나온 이들의 감상평부터 들어볼까요?

 

[녹취: 관람객]

"박종철... 영화 보고나서 감동적이었어요."

"유해진이요. 고문 받고도 끝까지 얘기 안 하잖아요. 가족 얘기하기 전까지는그게 대단한 거 같아요."

"이한열. 마지막에 뒤통수 맞았잖아요. 그게 너무 슬펐어요"

"이한열군으로 인해서 1987년도 그 시대는 안 살았지만 그 시대에 돌아가서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김현정> 영화를 보고 나서 박종철 열사나 이한열 열사, 그리고 세상에 진실을 전하려 노력했던 교도관들, 그런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리고 있는 거예요.

 

김정훈> 그런데 그 감상평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는데 무엇인지 아십니까?

 

김현정> 1987 영화 속에 찾아볼 수 없는 한 가지?

 

김정훈> 바로 여성입니다.

 

김현정> 대학생 연희 역할을 했던 배우 김태리씨도 있잖아요.

 

김정훈> 아시다시피 연희는 가공의 인물이거든요.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둔 영화였음에도, 허구의 인물을 내세워야 할 정도로 당시 민주화운동의 흐름에서 사실 여성은 잘 기억되지 않고 있죠.

 

김현정> 그러고 보니까, 이름들을 떠올리잖아요. 박종철, 이한열그런데 여성의 이름을 떠올리려 하면 잘 안 떠오르네요.

 

김정훈> 그런데, 과연 실제로도 여성은 없었을까요?

 

김현정> 당시 민주화운동의 흐름 속에서 여성들은 어디 있었을까? 여성의 역할은 뭐였을까, 이걸 취재해오신 거네요. 찾아보니 의미있는 흔적들이 있던가요?

 

김정훈> 박종철군 고문 치사 사건이 있기 전인 1984년으로 먼저 돌아가보겠습니다. 당시 경찰에 연행돼 가혹행위를 당했던 한 피해 여성의 말을 들어보시죠.

 

[녹취: 청량리경찰서 성추행 사건 피해자]

"여형사가 들어와서 괜찮다고, 다 벗으라고 얘기했었고. 거의 다 벗었는데 남자 형사들이 들어온 거죠. 안 하겠다고 버티다가 들어가서 항의했을 때 저 맞았어요. 그게 이 일만이겠어요? 다른 경우도 있지 않았을까요? 저 혼자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김현정> 이게 무슨 말인가요? 경찰서에 끌려왔는데, 옷을 다 벗으라 하고 항의를 하니 때렸다?

 

김정훈> 그것도 남자 경찰이요. 19849, '청량리경찰서 여학생 성추행 사건'이 있었습니다.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시위를 하던 여대생들이 경찰서에 연행돼 왔는데, 옷이 모두 벗겨진 상태에서 남자 경찰한테 모욕을 받고 심지어 폭행까지 당했다는 거죠.

 

김현정> 시위 현장에 분명 많은 여대생들이 있었다는 얘기예요. 그리고 성고문, 이것도 성고문성추행 아닙니까? 당했다는 거네요.

 

김정훈> 피해 여성은 어떻게 했을까요? 사실 무근이라는 경찰의 억지 주장, 그리고 회유와 협박 속에서도 대자보를 붙이고 기자회견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던 일인데, 들어보시죠.

 

[녹취: 청량리경찰서 성추행 사건 피해자]

"강당에서 제일 먼저 발표를 했었거든요. 다시는 이런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 때문에 얘기한 거였어요. 운동하는 여성으로서만이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거잖아요.“

 

김현정> 경찰은 그 수치심을 노린 거죠? 치욕을 줘서 이제는 입을 막아버리겠다, 이런 얘기예요.

 

 

 

86531일 화염병을 던지고 있는 이화여대생들(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제공)

 

김정훈> 그렇죠. 하지만 피해자가 용기를 낸 이후 여대생들이 주축이 된 규탄대회, 그리고 기자회견이 잇따랐습니다. 가해 경찰에 직접 책임을 묻는 일은 흐지부지 끝나긴 했지만 이 사건은 갓 탄생한 여성단체들이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됐고, 각 대학 여학생회 설립으로도 이어졌습니다. 당시 여성단체였던 '여성평우회' 등에서 활동한 이미경 현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의 말입니다.

 

[녹취: 이미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사장]

"청량리성추행 사건이 1차적으로 뭉치는 계기가 됐고요. 독자적인 활동 영역을 갖고 있으면서도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게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모아져서 나중에 여성단체연합으로 묶여진 거예요."

 

 

 

이미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사장 (사진=자료사진)

김현정> 말하자면 1984년 청량리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여성 민주화운동 세력이 조직화하기 시작한 거네요.

김정훈> . 그리고 이어서, 그 유명한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이 터집니다.

김현정>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권인숙씨가 피해자였죠.

김정훈> 1986년의 일이었습니다. 53일 인천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위장 취업해 노동운동을 해온 권인숙씨가 한달 뒤 경찰에 붙잡힙니다. 조사 과정에서 형사이던 문귀동이 이른바 '5.3 사태' 관련자의 행방을 물으며 자신의 성기로 권씨를 추행하는 고문을 자행한 것이죠.

 

김현정> 앞서 1984년 청량리경찰서 성추행 사건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여성 운동가들을 상대로 한 성적인 고문이 가해진 거네요.

 

김정훈> 이에 대해 경찰 당국은 권인숙씨를 "급진 좌파 사상에 물든 가출자일 뿐"이라고 매도했고, 그러니 가해자 문귀동도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는데, 당시 발언 들어보시죠.

 

[녹취: 고문 경찰관 문귀동]

"성고문이라고 뭐 성고문 성고문 보도하고 하는데, 성고문 한 사실도 없고, 일체 손 하나 댄 사실도 없습니다."

 

 

 

성고문사건 재판에 가위를 들고 재판정 입구에서 시위를 벌이는 민가협 회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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