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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06
  • 장매성
  • 작성자 : heradm 조회수 : 361

 

 

작가 이진석

 

 

장매성​​​(張梅性)

 

 

<유공자 정보>

 

◆ 생년월일 : (1911-06-22)
◆ 사망년월일 : (1993-12-14​​)
◆ 본적 : 전라남도 광주 光州 錦洞 97
◆ 주소 : 서울 中區 筆洞2가 86
◆ 운동계열 : 학생운동

◆ 애족장​(1990​​)

 


 

 

 

 

<공훈록>


광주(光州) 사람이다.

 

당시 광주지역 학생운동의 지도적 인물이었던 장재성(張載性)의 동생인 그는 광주여고보 재학중 1928년 11월에 동교생 장경례(張慶禮)·박옥련(朴玉連)·남협협(南俠俠)·고순례(高順禮)·이금자(李錦子) 등과 함께 광주사범학교 뒷산에 모여 조국의 독립과 여성해방을 목적한 항일학생결사 소녀회(少女會)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동지포섭에 힘쓰는 한편 매월 1회 월례연구회를 통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녀는 박계남(朴繼男)·박채희(朴采熙)·박현숙(朴賢淑)·김금연(金錦 ) 및 김귀선(金貴善) 등을 동지로 포섭하였으며, 그녀의 집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월례회를 개최하였다.

한편 동회는 성진회(醒進會)의 항일정신을 계승하여 광주학생의 항일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1929년 6월에 결성된 독서회중앙본부와도 연락을 갖고 활동하였다.

 

그리하여 동본부가 독서회원의 친목단결 및 재정활동 지원을 위해 학생소비조합을 조직할 때 각학교 독서회 및 학생들로부터 자본금을 출자하게 했는데 이때 광주여고보에서는 소녀회가 주동이 되어 자본금 30원을 출자하였다.

그녀는 소녀회의 중심인물로 항일민족정신을 고취하다가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동회를 주도하여 가두시위 도중 다친 부상학생 치료, 식수공급, 돌멩이운반 등 남학생들의 가두시위를 도왔다.

그후 소녀회의 조직이 발각됨에 따라 그녀도 1930년 1월 15일에 피체되었으며,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형을 언도받았다.

정부에서는 그녀의 공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판결문(1930. 10. 6 광주지방법원)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55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502·550면 조선일보(1930. 9. 28)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38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275·27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