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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06
  • 이병희
  • 작성자 : heradm 조회수 : 358

 

 

작가 김보연

 

 

이병희​​​(李甲文​​)

 

 

<유공자 정보>

 

◆ 생년월일 : (1913-08-28)
◆ 사망년월일 : (미상​​)
◆ 본적 : 제주도 제주 대정 하모 896
◆ 운동계열 : 학생운동

◆ 건국포장​(2018)

 


 

 

 

 

<공훈록>


서울 사람이다.

 

1936년 서울 종연방적주식회사(鍾淵紡績株式會社)에서 노동운동을 전개하였고, 1938년 북경(北京)으로 망명하여 이육사(李陸史) 등 의열단원(義烈團員)의 연락활동을 지원하였다.

 

장진홍 의사의 대구 조선은행 폭탄투척의거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바 있는 부친 이경식(李京植)의 민족의식을 이어받은 그는 동덕여자보통학교(同德女子普通學校)를 졸업하고 1933년 5월 경성 신설동(新設洞) 종연방적주식회사의 여공으로 근무하며 항일활동에 나섰다.

 

1936년 그는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김희성(金熙星)·박인선(朴仁善) 등과 여성동지들을 규합하여 노동운동을 전개하던 중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2년 4월 여의 옥고를 치른 끝에 1939년 4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그는 1939년 4월 출옥하자, 1940년 북경으로 망명하여 의열단에 가입하고, 동지 박시목(朴時穆)·박봉필(朴鳳弼) 등에게 문서를 전달하는 연락책을 맡았다.

 

그러던 1943년 그는 국내에서 북경으로 망명 온 이육사(李陸史)와 독립운동을 협의하던 중, 이해 9월 일경에 붙잡혀 북경감옥에 구금되었다.

 

그리고 잠시 국내로 잠입하였던 이육사도 붙잡혀 북경감옥에 함께 구금되고 말았다.

 

그는 1944년 1월 11일 결혼을 조건으로 석방되었으나, 이육사는 같은 해 1월 16일 옥중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이육사의 시신을 화장하고 유품을 정리하여 국내의 유족에게 전달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別集 第6輯 129面 除籍謄本(李陸史 屍身의 北京監獄에서 引受한 內容) 判決文(1939. 4. 14. 京城覆審法院)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