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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9
  • 김순애
  • 작성자 : heradm 조회수 : 385

 

 

작가 이주리

 

 

김순애​​(金淳愛)

 

 

<유공자 정보>

 

◆ 생년월일 : (1889-05-12​)
◆ 사망년월일 : (1976-05-17​)
◆ 본적 : 황해도 장연 大救 松川​
◆ 주소 : 서울 城東 新當 369의 53​
◆ 운동계열 : 임시정부​

독립장 ​(1977​​)

 


 

 

 

 

<공훈록>


황해도 장연(長淵) 사람이다.


만주에서 독립운동가 김규식(金奎植)과 결혼한 후 중국 상해(上海)로 이주하였다.


그녀는 1918년 11월 독일이 항복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듬해에 파리에서 강화회의(講和會議)가 열린다는 상해영자보(上海英字報)를 접하게 되었다.


이에 파리에 파견되어 강화회의에서 활동할 사람으로서 김규식이 결정되었다.


이에 그녀는 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할 목적으로 1919년 1월 서병호(徐丙浩) 등과 함께 상해에서 새로운 독립운동조직으로서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을 만들었다.


당원 150명의 신한청년단의 이사장으로는 서병호가 선출되고 그녀는 여운형(呂運亨)·김구(金九)·선우혁(鮮于赫)·이광수(李光洙) 등 8명과 함께 이사로 선임되었다. 


이사로 선출된 그녀는 상해와 만주, 국내를 왕래하며 한국 청년에게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며 광복운동에 적극 참여할 것 등을 주장하며 활약을 하였다. 


한편 상해로 다시 돌아온 그녀는 1920년 1월 상해에서 손정도(孫貞道)·김철(金徹)·김립(金立)·윤현진(尹顯振)·김구와 함께 조국광복운동을 위한 의용단(義勇團)을 발기하였다.


이 의용단은 임시정부를 지원키 위해 결성되었는데 본부는 상해에 있고 보다 조직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 상해에서 파견된 사람들에 의해 국내에도 지단이 조직되었다.


즉 평양에는 김석황(金錫璜)에 의해서 조직되었고 이외에도 부산과 황해도 지방에도 새로 조직되거나 혹은 기존의 다른 명칭의 단체가 명칭 변경을 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인 성격을 띄운 의용단으로 구성되었다.


의용단에서는 독립신문을 배달하는 등 독립사상의 계몽, 임시정부의 독립공채(獨立公債) 모집, 기타 재정자금(財政資金)을 수합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으며 무장독립운동도 조국광복을 위한 일환으로 하였다.


또한 그녀는 같은 해 상해에서 이화숙(李華淑)·이선실(李善實)·강천복(姜千福)·박인선(朴仁善)·오의순(吳義順) 등과 함께 조국독립운동에 여성들도 참여할 것을 목적으로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를 조직하여 회장으로 피선되었다.


대한애국부인회에서의 김순애는 한국 지도(地圖)의 제작 및 태극기의 제작 보급, 임시정부의 회의장 준비 등 임시정부의 선전을 민중의 저변으로 확대시키는 독립운동을 담당하였다.


한편 여성활동(女性活動)을 통한 여권(女權)의 지위 상승을 위하여 애쓴 결과 1922년 모스크바의 극동인민대표대회(極東人民代表大會)에 권애라(權愛羅)·김원경(金元慶) 두 사람의 대표를 파견하였다. 


이듬해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 때에는 그녀 자신이 부인회의 대표로 참석하였으나 임시정부 내의 개조파(改造派)와 창조파(創造派)의 대립으로 부인회 회장직을 떠났다.


또한 구한말(舊韓末)에 있었던 대한적십자회(大韓赤十字會)가 일제 침략과 더불어 해체되었던 것을 1919년 8월 상해에서 서병호(徐丙浩)·이희경(李喜儆) 안창호 등의 논의로 대한적십자회가 발기되자 사검(査檢)에 선임되었다. 


이어서 11월 23일 병원의 설립과 간호원양성소 설립을 목적으로 대한적십자회 회원 대모집의 경쟁회의를 공고하였다.


이에 이듬해 1월 27일에는 남녀 13명으로 구성된 적십자 간호원양성소를 개교(開校)하여 국제적십자회에 대한적십자회를 알리는데 주력하였다. 


간호원양성소는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하여 독립전쟁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의사를 양성하기 위함이 목적이었다. 


1921년 초에는 대한적십자회를 일본적십자회에서 독립시키기 위한 국제적십자회의의 교섭을 파리위원부의 이관용을 대표로 하여 전개하였다. 


또한 1920년 일본이 간도 출병(間島出兵)에서 저지른 만행을 폭로하여 적십자정신에 의해 일본을 규탄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협력하였다.


1920년 11월에는 상해대한인거류민단(上海大韓人居留民團)의 의원으로 피선된 그녀는 임시정부가 중경(重慶)으로 이전될 때까지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지원하며 독립운동을 위한 활동을 계속하였다.


1926년 7월에는 안창호(安昌浩)·염온동(廉溫東)·엄항섭(嚴恒燮)·송병조(宋秉祚) 등과 임시정부경제후원회를 발족시켜 쇠퇴하여가는 임정활동을 지원하였다. 


1930년 8월 16일에는 상해한인여자청년동맹을 조직하여 김구경(金九經)·박영봉(朴英峰) 등과 함께 1933년까지 독립운동을 측면에서 도왔다.


1940년 9월 임시정부가 중경으로 옮겨지면서부터 전시체제(戰時體制)로 돌입하게 되자 모든 주의(主義)와 이념(理念)이 다른 각 당파(黨派)들도 모두 임시정부를 지지 옹호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주의와 이념을 초월하여 애국, 구국을 다짐하는 사회단체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1943년 2월 23일에는 중경에 있던 각계 각파의 부인 50여 명이 임시정부 집회실에 모여 애국부인회 재건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그녀가 주석으로 선출되었고 방순희(方順熙)·연미당(延薇堂)·김윤택(金潤澤)·권계옥(權桂玉)·정정화·최소정·강영파 등이 간부로 선출되었다. 


그녀는 임원들과 함께 3.1독립운동 당시 애국부인회의 혁명적 애국 활동을 이어 구국을 위한 애국여성이 될 것 등 7개의 강령을 제시하였다.

 

재건된 애국부인회는 방송으로 국내외의 동포 여성들에 대한 분발과 각성을 촉구 호소하거나 위문금품을 거두어 무력항쟁하는 광복군을 위문하는 등 독립투쟁에 앞장을 섰다. 


또한 포로수용소를 통해 넘어오는 동포여성들을 계몽교육하여 조국광복 운동에 종사하게 하거나 해외 각지의 한국여성단체들과의 긴밀한 연락으로 임시정부에 대한 지지 성원을 두텁게 하는데 공헌을 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5월에는 광복운동을 위한 중국 각지에 있던 당파 대표자들을 중심으로 재중국자유한인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그녀는 한국부인회 대표로 참석하였다.


그 외 한국독립당의 홍진·조선민족혁명당의 김충광·조선민족해방동맹의 김규·무정부주의 연맹의 유월파·한국청년회의 한지성 등이 참석하여 주석단으로 추대되었다.


이들은 “한국은 완전 독립하여야 한다. 외국의 어떠한 간섭이라도 반대한다”는 내용의 강연과 토론을 가지고 한국민족의 독립, 민족국가의 건설 등을 골자로 하는 4개항의 재중국한인대회 선언을 국내외에 발표하여 거족적인 결의를 표시하였다. 


또한 대회 주석단의 명의로 각지 동포에게 보내는 공개서신을 통해 부당한 언론 탄압에 대한 반대토쟁의 전개와 동맹국 영수(領袖)에게는 우리의 완전독립보장과 대일작전의 원조를 요청하는 전문을 발송하였다.


1945년 11월 23일 주한미군사령부에서 보낸 비행기편으로 김구·김규식·이시영·김상덕·엄항섭·유동열·유진동·김진동·안미생 등 임정요인들과 함께 귀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조선민족운동연감 43, 53, 86, 94, 96면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63, 364, 365면

무장독립운동비사 36면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42, 67, 74면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427, 439, 505면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453면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204면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3권 484, 494, 610, 614, 620면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152, 299, 309, 311, 421, 599, 605, 762, 786, 830면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857면

독립신문(1920. 2. 14)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68, 112, 351, 460, 479, 1031, 1033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315, 417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383면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882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281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97, 100, 102면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04, 406, 427면